감탄문

어른이 돼서 좋은 점은 엄마가 ‘콩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고
하는 대신 ‘콩 안 먹을 거면 옆에 빼놔’라고 한다는 거다.

평서문

잡스런 디테일이 무성한 꿈을 꾸었다.

4. 위 문단에서 글의 흐름과 가장 관계없는 문장을 1개 고르시오.

5.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화자의 가치관을 세 어절로 정리해
 보시오.

영화들을 챙겨보았더니 엄청 신이 났다. 다른 건 그냥 시간이
흐르나 보다 하겠는데 그렇게 진솔한(!!) 액션 영화들은 ‹맨인블랙›,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그렇고 어쩐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때는 멜 깁슨, 스티븐 시걸, 리처드 기어, 알렉 볼드윈,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는데 그 중 리처드 기어는 이제
섹시해 보이고 알렉 볼드윈도 경쾌하고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배우보다는 그냥 사람 같고 스티븐 시걸은 여전히 싫다. 나이
많은 배우 중에는 토미 리 존스랑 잭 니콜슨이 짱 먹는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지식이 아니라 개봉영화를 챙겨보던 중고등학교 때의
추억으로 멈춰있다. 명절 때만 되면 티비에서 다이하드 쓰리를
하도 해대서 원도 모르고 투도 모른채 주구장창 쓰리만 봤는데
물 3리터랑 5리터(갤론인가?) 퀴즈는 볼 때마다 못 풀다가 이제는
완벽하게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제레미 아이언스도
어쩜 그렇게 섹시하고 제레미 아이언스 하면 게리 올드만이 같이
생각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 ‹마스크›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였는지도 생각나고 ‹스네이크 아이즈›도 생각나고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1.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2. 화자가 바라는 해결책은 이 글 어느 부분에 제시되어 있는가?

3. 이 글에는 어떤 비유법이 사용되고 있는가? 각 비유법을 찾고
  그에 관한 예시를 1개 이상 드시오.

바라본다는 일은 이미 무너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잠을 자는 사람을 밤새도록 지켜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도 끊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얇게 늘어져 계속 이어져 가는 것은 무엇인지, 감춰져도 죽지
않고 피어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끼어드는 문장에 매번
원점으로 끌려오는 삶과 빠르게 피어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연설문

빠르게 생겨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도록 감춰져
온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비밀은, 아니 어떤 것은, 그에
충실해지기 위해 비밀이 되어야 함을 생각했다. 숨겨져야 하는
사실이기에 비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숨겨져야 하는 진실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이 모든 사람을 떠남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세상에 어떤 규칙도 없는
것처럼 떠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과 나 사이의
거리, 비정상적으로 짧은 공간에 찌끄맣게 부대낀 수많은
사건들, 불필요하게 멀어져 버린 기억과 나 사이의 공간에
의미없이 떠다니는 사건들. 한 순간에 피어오르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도록 감춰진 사랑을 생각했다. 기쁨이라 생각해 온
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이 고통이라는
단어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음에 대해. 안전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자유로운 모든 것과 의심하는 삶에
대해, 의심하는 기쁨과 의심하는 고통에 대해.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은 채로 방해없이 참아야 할 때도 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조각을 모으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 상태의 지속만이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인 건 아닐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것은
성취가 아니라 리뉴얼의 문제임을, 배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배가
고파지는 멍청한 과정임을, 그리고 그것도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잊어야 함을 생각했다. 오래도록 감춰진 사랑.
끊임없이 끼어드는 문장에 대해 생각했다. 천천히 잠을 자는 화면
속의 그녀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눈을 돌리면, 지속되는 잠을

옛날에 그 네 명짜리 창가 테이블에 앉아서 번호 처음 물어봤던
옛날에 니가 사람들 앞에서 내 손을 잡고 들어갔던 건물
옛날에 그 왜 내가 너를 따라 치고 칭찬받았던 피아노 멜로디
옛날에 그 왜

소설

옛날에 그 스툴에 앉아있는데 우리 둘이 남매냐고 물어봤던
옛날에 그 왜 니가 나 따라서 진토닉을 시키고 궁뎅이 큰 고양이가
옛날에 그 왜 나 집에 가려고 보니까 걔가 내 얼굴도 안 쳐다보고
 스도쿠 하던
옛날에 그 왜 소주 마시고 애들이 동전 잔뜩 모아서
옛날에 그 엄청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민 손에 내가 악수부터
 하는 바람에 포옹을
옛날에 그 왜 데낄라 싸게 파는데 너만 한번에 두 잔씩 시켜놓고
 마시던
옛날에 그 왜 싸구려 잔치국수 먹고 컵에 닭강정 하나
옛날에 니가 왜 공중전화로 전화해서 ‘난데’라고 했던
옛날에 그 왜 안쪽에 큰 테이블이랑 합쳤는데 재미없고 진지한
 사람이 말 붙여서
옛날에 그 왜 걔 울산 가서 혼자 맥주 마셨다는 얘기하다가
옛날에 그 왜
옛날에 그 왜 왓슨스 멀리 긴 코트 입고 걸어오던 니가
옛날에 그 왜 치킨 집에 같이 앉아 티셔츠 사업 얘기하던
옛날에 그 왜 강의 끝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너를
그리고 그 날 우리 어두운 골목에서 입 맞추며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던
옛날에 그 왜 잔뜩 싸우고 놀이터에 앉아 니 어깨에 머리를 기댔던
옛날에 그 긴 입맞춤에 네가 부끄러워 하고 우리 다리 그림자가
 모래에 크게 비쳤던

내가 쓰는 글들은 대개 싸이월드에 있었거나, 그 다음으로 페이스북에 있었거나, 그 다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있다. 워드나 메모를 열어놓고 글 쓰는 짓을 잘 못하고 노트를 펼쳐 손으로 글씨를 적는 일도 점점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 글은 실시간으로 그 날, 그 시기에 봤을 때 그 ‘시간’과 함께 엮여 이해되거나 웃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책 만들기를 생각할 때 충돌을 일으킨다. 책이야말로 실시간보다는 헛시간, 장시간, 죽은 시간에 가까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리는 습관 때문에 나는 앞뒤 정보를 잘라놓고 ‘이미 내가 겪은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만 100%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 이것이 인쇄물로 옮겨질 경우 무책임한 낙서처럼 느껴지거나, 내 귀한 시간 낭비하며 읽어야 하는 남의 사사로운 일기처럼 느껴지고 인쇄물로 옮기겠다고 착실하게 정보, 사건의 경위, (심지어 가끔은 글의 화제…) 등을 집어넣기 시작하면 분식집 떡볶이를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것처럼 어쩐지 결이 맞지 않아 혀가 조금 꼬인다. 나에게 가장 가깝고 애틋한 매체는 언어이고 글자이고, 그래서 곧 책이기 때문에 이런 충돌이 나에게는 퍽 혼란스러운데 무엇이 됐든 생각을 좀, 뇌를 좀, 관점을 좀, 환기시켜야 할 것 같다.

경고문

사랑의 시는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선반 위
벽 높이에
문틈 사이로

좌표

덥고 더워서 더우니 더운데 덥지만 더우니까 더우므로 더운 더우며
더우면 더울 덥던 덥다고 덥다니 더웠고 덥다가 덥기에 덥거든
더워도 더워야 더운들 덥다가 덥고서 덥자마자 덥도록 더우면서
더우나 덥다만 덥거나 덥든지 덥든가 더우러 더우려고

2년 전에 만든 나의 두번째 책 <거의 모든 경우의 수: parlando>는 세상의 (거의) 모든 글들을, 때로 글자와 말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시와 소설, 논설문과 생활문부터 자막, 편지, 소문, 귓속말 같은 것들이 다 들어있다. 내가 제일 하기 싫었던 것이 ‘이경후의 에세이’라는 형태로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그럴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는 건 동시에 ‘그럴 위치인 사람들만 그런 걸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는 얘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글을 남에게 공개하고 읽히는 데 있어 나는 내가 의존할 수 있는 핑곗거리, 브릿지 같은 것이 필요했다. 내 글을 내놓을 만한 염치를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나에게는 내용물을 담는 형식에 재미와 유머가 필요하다. 작업을 하나로 꿰어줄 수 있는 콘셉트가 생겼을 때, 그 콘셉트가 허용하는 게임의 범위 안에서 마음껏 노는 것이 좋다. 나는 ‘아무거나 그리고 싶은 걸 그려봐’라고 하면 종이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규칙 몇 가지를 주면 규칙을 발판 삼아 안드로메다로 달려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지금껏 만든 두 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닮았다. 나는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놀이터의 튼튼한 울타리로서 규칙을 사랑한다. 동시에 규칙은 조금씩 벗어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규칙의 보호를 향유하고 규칙의 위배를 사수한다.

거기

그곳

영화? 잘 만들었던데
내가 이 사람 걸 첨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원래 딱 좋아하는 장르는 아닌데
난 너무 좋았어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막 엄청 걸작이라는 건 아니지만 원래
내가 저 음악을 좀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아무튼 최고야 또 막 분석하면
평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근데 영화관에
사람이 진짜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같이 본 친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잘 만들었던데
난 너무 좋았어 최고야

berlin, germany 2011

어떤 사람들은 한개의
영혼을 나눠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한개의
영혼을 나눠갖는다.

결국 <눌변>은 자신감 없음에 대한 책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말들과 우유부단, 실패의 흔적, 순간과 순간 사이, 쿨하지 못함, 잉여, 이런 것들이 나에게 있어 가장 마지막으로 가리키는 것은 서택을 쟁취하지 못하는 삶이엇다. 선택하지 못함을 선택했다는 낭만적인 수사가 여기에서 가능할까. 결국 마침표를 붙일지 쉼표를 붙일지 모르겠다는 것. 나 아닌 어떤 세상은 참 쉽기도 하다는 것.

budapest, hungary 2007

new york, usa 2016

여보세요

여보세요

,

.

turin, italy 2016

hiroshima, japan 2010

죽도로 맛있는 커피 두 잔을 마신 뒤엔 커피숍에서 나는 콩냄
새에도 어질했(다/는데) 막걸리 두 잔 쯤을 마시고 버스에 앉
(았다/아) 억지로 글(을/까지) 읽다 말다 하다가, 내가 뭐에 대
해 생각하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몇 번을 휘청였(다/고) 그
게 내 몸이었다면 분명 버스 바닥에 나뒹굴었을 그런 횡-몰
몰아치는 휘청임(./이어서) 모가지가 상상 속에서 회오리처럼
몇 번을 돌았(다/었던가) 한숨을 쉬어도 위장에 각종 찌꺼기
가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고) 사납지 않지만 도무지 잡스러
워 곱게 봐줄 수가 없는 이 망할 것(./,) 그걸 해소하기 위해 코
미디 프로(를/만) 보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내(가/게) 필
요한 게 무얼까 생각(했다/해보니) 노래방을 가지 못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다가) 집에 와서 붕어싸만코를 먹고 조금 나
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가 위장을 흔들고 어깨를
꽉 붙들고 턱을 굳혀놓고 있(다/어서) 그냥 찌질한 숙취 같(다/
아) 뭐 맛있는 거 없(다/나)

zagreb, croatia 2015

우직

오직

뚜렷하게 한쪽 사진이 더 낫더라도 그 옆에 비슷한 사진이 놓이는 순간, 잘 된 사진은 그 ‘쿨함’ 잃는다. 부연 설명이 없고, 미주알고주알이 없고, 자초지종이 없는 사람, 이면에 숨겨진, 혹은 흔히들 숨기는 찌질한 고민과 전전긍긍함을 이야기하지 않는 세상에게 또 사람들에게 느껴온 배신감과 상처는 내 삶에서 큰 테마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세상을 모를 때, 그런 침묵과 비밀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위화감, 해로운 선망과 동경에 자주 시달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신비롭고 쿨한 아우라를 유지하는 것. 나는 말이 없는 사람보다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했다. 이 세계 안에 비밀이 차지하는 자리가 (그래도) 있(긴 있) 는 걸 알게 된 건 연애를 하고 나서부터였다. 언제나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었던 시를 향해 마음을 (조금) 열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new york, usa 2015

마나

하나

<a second chance: 눌변>은 우유부단함과 어눌함에 관한 책이다. 과감하게 덜어내지 못함, 잘라내지 못함, 포기하지 못함,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함, 결정하지 못함, 판단하지 못함에서 출발했다.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은 흔적들이 많았다. 가로보다 세로가 나을까봐, 사진이 흔들렸을까봐, 필름이 제대로 안 나올까봐 같은 장면을 2번, 3번, 4번씩 찍었다. 기술적으로 필름 카메라를 별로 다룰 줄도 모르면서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셔터를 누를 줄만 알았다. 통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택하는 것이 어려워 여러 개의 선택지를 말해버린다. 단어를 하나 더 말할 때마다, 전하려는 의미가 오해 받지 않게 하는 울타리를 세운다. 양을 몰듯이 의미를 몬다. 번역을 할 땐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으므로 언제나 조금씩은 베팅을 해야 한다.

turin, italy 2016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가는 가는 가는
떠나 떠나
나를
내게
다가 다가
오는 오는 오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

budapest, hungary 2015

읽다
쓰다

마음을

beijing, china 2008

나는 ‘책을 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언제나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나에게 책을 의뢰하거나 제안한 출판사와 함께 했다면 책을 냈다고 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어도 출판사와 같이 일했다면 그것도 냈다고 할 것 같다. 나 혼자 만들었다는 이유로 굳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닐텐데 - 그러면 너무 이상하잖아. 내가 과연 어떤 책을 ‘만들고’ 나면 ‘냈다’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과정의 종류가 중요한가? 아니면 시간? 30개 쯤 만들고 나면 지쳐서 (혹은 익숙해져서) ‘냈다’는 말이 나오나? 모르겠다. ‘(낸 게 아니라) 그냥 혼자 만든 거예요’라는 식으로 되도 않게 또 내 세상을 축소하는 꼼수라면 당장 관둬야 할 텐데 나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나는 그 동안 두 권의 책을 만들었다. 내지 않았어요.


나는 ‘책을 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언제나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나에게 책을 의뢰하거나 제안한 출판사와 함께 했다면 책을 냈다고 할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어도 출판사와 같이 일했다면 그것도 냈다고 할 것 같다. 나 혼자 만들었다는 이유로 굳이 ‘만들었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닐텐데 - 그러면 너무 이상하잖아. 내가 과연 어떤 책을 ‘만들고’ 나면 ‘냈다’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과정의 종류가 중요한가? 아니면 시간? 30개 쯤 만들고 나면 지쳐서 (혹은 익숙해져서) ‘냈다’는 말이 나오나? 모르겠다. ‘(낸 게 아니라) 그냥 혼자 만든 거예요’라는 식으로 되도 않게 또 내 세상을 축소하는 꼼수라면 당장 관둬야 할 텐데 나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나는 그 동안 두 권의 책을 만들었다. 내지 않았어요.

beijing, china 2008

마음을

읽다
쓰다

budapest, hungary 2015

내게
다가 다가
오는 오는 오는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사람
가는 가는 가는
떠나 떠나
나를

turin, italy 2016

<a second chance: 눌변>은 우유부단함과 어눌함에 관한 책이다. 과감하게 덜어내지 못함, 잘라내지 못함, 포기하지 못함, 과감하게 선택하지 못함, 결정하지 못함, 판단하지 못함에서 출발했다.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똑같은 장면을 여러 번 찍은 흔적들이 많았다. 가로보다 세로가 나을까봐, 사진이 흔들렸을까봐, 필름이 제대로 안 나올까봐 같은 장면을 2번, 3번, 4번씩 찍었다. 기술적으로 필름 카메라를 별로 다룰 줄도 모르면서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나는 셔터를 누를 줄만 알았다. 통역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선택하는 것이 어려워 여러 개의 선택지를 말해버린다. 단어를 하나 더 말할 때마다, 전하려는 의미가 오해 받지 않게 하는 울타리를 세운다. 양을 몰듯이 의미를 몬다. 번역을 할 땐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으므로 언제나 조금씩은 베팅을 해야 한다.

하나

마나

new york, usa 2015

뚜렷하게 한쪽 사진이 더 낫더라도 그 옆에 비슷한 사진이 놓이는 순간, 잘 된 사진은 그 ‘쿨함’ 잃는다. 부연 설명이 없고, 미주알고주알이 없고, 자초지종이 없는 사람, 이면에 숨겨진, 혹은 흔히들 숨기는 찌질한 고민과 전전긍긍함을 이야기하지 않는 세상에게 또 사람들에게 느껴온 배신감과 상처는 내 삶에서 큰 테마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세상을 모를 때, 그런 침묵과 비밀이 나에게 불러일으키는 위화감, 해로운 선망과 동경에 자주 시달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신비롭고 쿨한 아우라를 유지하는 것. 나는 말이 없는 사람보다 말이 많은 사람을 좋아했다. 이 세계 안에 비밀이 차지하는 자리가 (그래도) 있(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연애를 하고 나서부터였다. 언제나 의심과 경계의 대상이었던 시를 향해 마음을 (조금) 열게 된 것도 그때부터다.

오직

우직

zagreb, croatia 2015

죽도로 맛있는 커피 두 잔을 마신 뒤엔 커피숍에서 나는 콩냄새에도 어질했(다/는데) 막걸리 두 잔 쯤을 마시고 버스에 앉(았다/아) 억지로 글(을/까지) 읽다 말다 하다가, 내가 뭐에 대해 생각하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이 몇 번을 휘청였(다/고) 그게 내 몸이었다면 분명 버스 바닥에 나뒹굴었을 그런 횡-몰 몰아치는 휘청임(./이어서) 모가지가 상상 속에서 회오리처럼 몇 번을 돌았(다/었던가) 한숨을 쉬어도 위장에 각종 찌꺼기 가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고) 사납지 않지만 도무지 잡스러 워 곱게 봐줄 수가 없는 이 망할 것(./,) 그걸 해소하기 위해 코 미디 프로(를/만) 보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내(가/게) 필 요한 게 무얼까 생각(했다/해보니) 노래방을 가지 못해서라는 결론을 내렸(다/다가) 집에 와서 붕어싸만코를 먹고 조금 나 아졌(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무언가가 위장을 흔들고 어깨를 꽉 붙들고 턱을 굳혀놓고 있(다/어서) 그냥 찌질한 숙취 같(다/ 아) 뭐 맛있는 거 없(다/나)

hiroshima, japan 2010


turin, italy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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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여보세요

new york, usa 2016

budapest, hungary 2007

결국 <눌변>은 자신감 없음에 대한 책이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말들과 우유부단, 실패의 흔적, 순간과 순간 사이, 쿨하지 못함, 잉여, 이런 것들이 나에게 있어 가장 마지막으로 가리키는 것은 서택을 쟁취하지 못하는 삶이엇다. 선택하지 못함을 선택했다는 낭만적인 수사가 여기에서 가능할까. 결국 마침표를 붙일지 쉼표를 붙일지 모르겠다는 것. 나 아닌 어떤 세상은 참 쉽기도 하다는 것.

어떤 사람들은 한개의
영혼을 나눠갖는다.

어떤 사람들은 한개의
영혼을 나눠갖는다.


berlin, germany 2011

영화? 잘 만들었던데
난 너무 좋았어 최고야

영화? 잘 만들었던데
내가 이 사람 걸 첨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원래 딱 좋아하는 장르는 아닌데
난 너무 좋았어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막 엄청 걸작이라는 건 아니지만 원래
내가 저 음악을 좀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아무튼 최고야 또 막 분석하면
평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근데 영화관에
사람이 진짜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같이 본 친구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

그곳

2년 전에 만든 나의 두번째 책 <거의 모든 경우의 수: parlando>는 세상의 (거의) 모든 글들을, 때로 글자와 말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시와 소설, 논설문과 생활문부터 자막, 편지, 소문, 귓속말 같은 것들이 다 들어있다. 내가 제일 하기 싫었던 것이 ‘이경후의 에세이’라는 형태로 책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가 그럴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는 건 동시에 ‘그럴 위치인 사람들만 그런 걸 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다는 얘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 글을 남에게 공개하고 읽히는 데 있어 나는 내가 의존할 수 있는 핑곗거리, 브릿지 같은 것이 필요했다. 내 글을 내놓을 만한 염치를 위한 것이었다. 동시에 나에게는 내용물을 담는 형식에 재미와 유머가 필요하다. 작업을 하나로 꿰어줄 수 있는 콘셉트가 생겼을 때, 그 콘셉트가 허용하는 게임의 범위 안에서 마음껏 노는 것이 좋다. 나는 ‘아무거나 그리고 싶은 걸 그려봐’라고 하면 종이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규칙 몇 가지를 주면 규칙을 발판 삼아 안드로메다로 달려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 지금껏 만든 두 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닮았다. 나는 안전하게 뛰놀 수 있는 놀이터의 튼튼한 울타리로서 규칙을 사랑한다. 동시에 규칙은 조금씩 벗어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규칙의 보호를 향유하고 규칙의 위배를 사수한다.

경고문

덥고 더워서 더우니 더운데 덥지만 더우니까 더우므로 더운 더우며
더우면 더울 덥던 덥다고 덥다니 더웠고 덥다가 덥기에 덥거든
더워도 더워야 더운들 덥다가 덥고서 덥자마자 덥도록 더우면서
더우나 덥다만 덥거나 덥든지 덥든가 더우러 더우려고

좌표

사랑의 시는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선반 위
벽 높이에
문틈 사이로

내가 쓰는 글들은 대개 싸이월드에 있었거나, 그 다음으로 페이스북에 있었거나, 그 다음으로 인스타그램에 있다. 워드나 메모를 열어놓고 글 쓰는 짓을 잘 못하고 노트를 펼쳐 손으로 글씨를 적는 일도 점점 엄청나게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내 글은 실시간으로 그 날, 그 시기에 봤을 때 그 ‘시간’과 함께 엮여 이해되거나 웃겨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책 만들기를 생각할 때 충돌을 일으킨다. 책이야말로 실시간보다는 헛시간, 장시간, 죽은 시간에 가까운 매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올리는 습관 때문에 나는 앞뒤 정보를 잘라놓고 ‘이미 내가 겪은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만 100%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 이것이 인쇄물로 옮겨질 경우 무책임한 낙서처럼 느껴지거나, 내 귀한 시간 낭비하며 읽어야 하는 남의 사사로운 일기처럼 느껴지고 인쇄물로 옮기겠다고 착실하게 정보, 사건의 경위, (심지어 가끔은 글의 화제…) 등을 집어넣기 시작하면 분식집 떡볶이를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것처럼 어쩐지 결이 맞지 않아 혀가 조금 꼬인다. 나에게 가장 가깝고 애틋한 매체는 언어이고 글자이고, 그래서 곧 책이기 때문에 이런 충돌이 나에게는 퍽 혼란스러운데 무엇이 됐든 생각을 좀, 뇌를 좀, 관점을 좀, 환기시켜야 할 것 같다.

소설

옛날에 그 스툴에 앉아있는데 우리 둘이 남매냐고 물어봤던
옛날에 그 왜 니가 나 따라서 진토닉을 시키고 궁뎅이 큰 고양이가
옛날에 그 왜 나 집에 가려고 보니까 걔가 내 얼굴도 안 쳐다보고 스도쿠 하던
옛날에 그 왜 소주 마시고 애들이 동전 잔뜩 모아서
옛날에 그 엄청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내민 손에 내가 악수부터 하는 바람에 포옹을
옛날에 그 왜 데낄라 싸게 파는데 너만 한번에 두 잔씩 시켜놓고 마시던
옛날에 그 왜 싸구려 잔치국수 먹고 컵에 닭강정 하나
옛날에 니가 왜 공중전화로 전화해서 ‘난데’라고 했던
옛날에 그 왜 안쪽에 큰 테이블이랑 합쳤는데 재미없고 진지한 사람이 말 붙여서
옛날에 그 왜 걔 울산 가서 혼자 맥주 마셨다는 얘기하다가
옛날에 그 왜
옛날에 그 왜 왓슨스 멀리 긴 코트 입고 걸어오던 니가
옛날에 그 왜 치킨 집에 같이 앉아 티셔츠 사업 얘기하던
옛날에 그 왜 강의 끝나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너를
그리고 그 날 우리 어두운 골목에서 입 맞추며 서로의 몸을 쓰다듬었던
옛날에 그 왜 잔뜩 싸우고 놀이터에 앉아 니 어깨에 머리를 기댔던
옛날에 그 긴 입맞춤에 네가 부끄러워 하고 우리 다리 그림자가 모래에 크게 비쳤던
옛날에 그 네 명짜리 창가 테이블에 앉아서 번호 처음 물어봤던
옛날에 니가 사람들 앞에서 내 손을 잡고 들어갔던 건물
옛날에 그 왜 내가 너를 따라 치고 칭찬받았던 피아노 멜로디
옛날에 그 왜

연설문

빠르게 생겨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도록 감춰져
온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비밀은, 아니 어떤 것은, 그에
충실해지기 위해 비밀이 되어야 함을 생각했다. 숨겨져야 하는
사실이기에 비밀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를 입지 않기 위해
숨겨져야 하는 진실들이 있다는 것을. 사람이 모든 사람을 떠남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말도 듣지 않고 세상에 어떤 규칙도 없는
것처럼 떠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기억과 나 사이의
거리, 비정상적으로 짧은 공간에 찌끄맣게 부대낀 수많은
사건들, 불필요하게 멀어져 버린 기억과 나 사이의 공간에
의미없이 떠다니는 사건들. 한 순간에 피어오르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오래도록 감춰진 사랑을 생각했다. 기쁨이라 생각해 온
것을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함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이 고통이라는
단어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음에 대해. 안전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자유로운 모든 것과 의심하는 삶에
대해, 의심하는 기쁨과 의심하는 고통에 대해.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 것도 듣지 않은 채로 방해없이 참아야 할 때도 있음에 대해
생각했다. 조각을 모으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 상태의 지속만이
필요한 일 가운데 하나인 건 아닐지에 대해 생각했다. 모든 것은
성취가 아니라 리뉴얼의 문제임을, 배고프면 밥을 먹고 다시 배가
고파지는 멍청한 과정임을, 그리고 그것도 밥을 먹는 것과 같이,
멍청하다는 사실을 잊어야 함을 생각했다. 오래도록 감춰진 사랑.
끊임없이 끼어드는 문장에 대해 생각했다. 천천히 잠을 자는 화면
속의 그녀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며 눈을 돌리면, 지속되는 잠을
바라본다는 일은 이미 무너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잠을 자는 사람을 밤새도록 지켜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고개를 돌려도 끊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
얇게 늘어져 계속 이어져 가는 것은 무엇인지, 감춰져도 죽지
않고 피어나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끼어드는 문장에 매번
원점으로 끌려오는 삶과 빠르게 피어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했다.

영화들을 챙겨보았더니 엄청 신이 났다. 다른 건 그냥 시간이
흐르나 보다 하겠는데 그렇게 진솔한(!!) 액션 영화들은 ‹맨인블랙›,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도 그렇고 어쩐지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때는 멜 깁슨, 스티븐 시걸, 리처드 기어, 알렉 볼드윈, 아놀드
슈왈츠네거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는데 그 중 리처드 기어는 이제
섹시해 보이고 알렉 볼드윈도 경쾌하고 아놀드 슈왈츠네거는
배우보다는 그냥 사람 같고 스티븐 시걸은 여전히 싫다. 나이
많은 배우 중에는 토미 리 존스랑 잭 니콜슨이 짱 먹는다. 이 모든
것들은 다 지식이 아니라 개봉영화를 챙겨보던 중고등학교 때의
추억으로 멈춰있다. 명절 때만 되면 티비에서 다이하드 쓰리를
하도 해대서 원도 모르고 투도 모른채 주구장창 쓰리만 봤는데
물 3리터랑 5리터(갤론인가?) 퀴즈는 볼 때마다 못 풀다가 이제는
완벽하게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제레미 아이언스도
어쩜 그렇게 섹시하고 제레미 아이언스 하면 게리 올드만이 같이
생각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면 ‹마스크›가 얼마나 대단한
영화였는지도 생각나고 ‹스네이크 아이즈›도 생각나고 한도 끝도
없으니 여기서 그만해야겠다.

1. 이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2. 화자가 바라는 해결책은 이 글 어느 부분에 제시되어 있는가?

3. 이 글에는 어떤 비유법이 사용되고 있는가? 각 비유법을 찾고
 그에 관한 예시를 1개 이상 드시오.

4. 위 문단에서 글의 흐름과 가장 관계없는 문장을 1개 고르시오.

5.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화자의 가치관을 세 어절로 정리해
 보시오.

평서문

잡스런 디테일이 무성한 꿈을 꾸었다.

감탄문

어른이 돼서 좋은 점은 엄마가 ‘콩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고
하는 대신 ‘콩 안 먹을 거면 옆에 빼놔’라고 한다는 거다.